[마르헨피플] 미국 사는 우지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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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계시는 우지희 고객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MARHEN.PEOPLE ver.2 마르헨제이를 사랑하는 ‘찐’팬분들의 삶과 여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바쁜 일상 속 내 삶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세요!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에 살고 계시는 우지희 고객님의 이야기입니다 : )
미국으로 이민 간 결정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16살 이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권유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는 다른 미국의 학교생활은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느껴졌고, 각 개인의 달란트대로 이끌어 주었던 미국
교육 방식은 어린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유학으로서 미국 생활은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 가장 어려웠던 점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꾸려가고 있는 삶으로서 미국 생활은 사실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기에 훨씬 더 익숙한 한국과 하나하나 비교하는 것이 어려워요. 아이들 교육부터 먹거리까지 모든 순간과 과정들이 다 새로운 도전이었으며, 그냥 흐르는 대로 ‘내려놓음‘의 마음가짐을 갖기까지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은 어떤 것이 있나요? 미국에 남편과 다시 왔을 당시,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드높고 넓은 미국 땅을 횡단하는 자유로움과 눈에 채워지는 새로운 것들이었어요. 이 넓은 땅 곳곳을 여행 다니며 새 경험으로 우리를 채우는 것은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가족과 함께 이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거창하게 결정을 하고 시작한 이민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미국에
오고 싶다는 꿈은 한국에서 결혼 후에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혼 후
남편을 한국에 두고 혼자 캐나다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미국 생활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요?
처음 몇 년은 남편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던 사람이에요. 제가 유학시절 느꼈던
향수병을 서른 넘은 나이에 견디려 하니, 그만두고 돌아가려고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운동과 여행을 즐기는 이유와 그것이 당신의 삶에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여행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남편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몇 개의 주를 제외하고 미국 대부분의 주를 밟아본
것 같아요.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여행은 더 열심히 열정을 갖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미술 가르치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캐나다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상담학 교수셨던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미술 심리상담학까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실제 한국에서 교육을 했던 경력도 있었고요. 그렇게 준비는 되었지만
저에게 있어 남편의 공부, 남편의 직장, 첫째와 둘째 임신과 육아가 제 인생의
우선순위였어요. 둘째도 세상에 나오고 육아에 지치고 자아를 잊어 갈 때 즈음,
미국에서 만난 대학 선배의 권유로 조심스레 미술 가르치는 것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하시는 남편과의 일상은 어떤가요? 남편분은 이민을 강력히 반대하셨었다고요?
남편은 한국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일주일의 미국, 캐나다
여행이 그의 마음을 바꿨어요.
자녀분 소개 부탁해요.
첫째 아들은 10살,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알라바마 몽고메리 시 대표로
짐네스틱(기계체조) 팀에서 활약을 했어요. 사실 2살부터 몸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기계체조이지만, 꾸준히 한 결과로 팀의 유일한 한국인으로 주
대표까지 하며 매스컴에도 나오는 성과를 냈어요. 또 축구, 수영, 탁구 등 여러
운동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미국 내에서는 명실상부한 US Kids 골프
토너먼트에도 참여하며 경력을 쌓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 진행을 시작한 계기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 외출이 자제되던 시간, 저녁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그 시절 유일한 낙이었어요. 다양한 사연과
노래들, 라디오를 통해 소통하는 실시간 참여 코너들이 실제 공간에서 일어나는
만남을 대신해 주었죠.
아프리카 봉사활동이 미래의 꿈인 이유와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첫째를 낳고 컴패션을 통해 아프리카의 아이 한 명을 서포트 했어요. 첫아이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아들을 키우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죠.
또한 나중에 아들이 그곳으로 선교를 가서 또래의 그 아이를 직접 만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막연히 아프리카 봉사 활동이 미래의 꿈이라 말하고 있어요.
사실 꼭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세상 어딘 가에 내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필요한
곳에 쓰임 받는 삶을 살고 싶어요.
도전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유와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루 24시간은 제 인생에서 짧은 시간이에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아쉽죠.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게, 나 자신, 그리고 가족들과 뿌듯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나의 삶에 도전이 있는 이유이고, 그 도전이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원동력이 됩니다. 남편은 항상 제가 꿈이 많은 소녀라고 해요. 그 꿈, 그 도전이 제 삶의 이유이고, 하나씩 이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 정의하고 싶어요.
마르헨제이 핸드백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유와 그것이 도전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해 주세요.
마르헨제이와의 인연은 10년이 훌쩍 넘는 듯하네요. 가방의 디자인이 눈에 든
것도 있지만,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마르헨제이 사옥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날 대표님을 뵙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나눈 기억이 있는데요, 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열어 들어주는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꼈어요. 편견이 없는 대표가
이끄는 브랜드라 저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던 것 같아요.
미국 친구분들께 마르헨제이 소개도 많이 하셨다고요?
먼저 마르헨제이 디자인, 색상, 가방의 느낌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미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로 더 예쁘게
차려 입고 가방을 메고 나갔던 거 같아요. 내 주변 지인들, 우연히 가방에 눈이
멈춘 사람들, 백화점에서 만난 아줌마들, 교회에서 만난 집사님들, 식당에서 만난
멋쟁이 아줌마 등 모두들 무슨 가방이냐고 물었고, 전 비건 이야기부터 풀어 놓았어요.
관심에서 시작해서 홍보가 되었고,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의 구매까지 이어졌죠.
마르헨제이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친환경 제품이라는 기업 윤리와 마르헨제이만의 색감, 디자인 그리고 실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방은 단순히 물건의 수납공간을 넘어 패션 아이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마르헨제이 가방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저에게는 치명적인 스토리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입니다.
패션과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가치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패션은 단순히 스타일링을 어떻게 했고, 컬러를 어떻게 매칭했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 자신을 어필하고 드러내는 수단이자, 제가 살아온 모습과 색깔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에 대한 예절이자 기본 매너이며,
때로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죠.
미국 이민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쉽지 않은 타국 생활을 무조건 동경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충분한 준비와 명료한 목적이 있는 이민이 되어야 하죠. 짐 들고 무조건 넘어와 성공하는 아메리칸드림은 옛 역사책 이야기예요. 도전적인 목표를 가지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목적을 가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꿈을 꾸고 그 꿈에 날개를 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그 꿈은 이뤄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지희에게 마르헨제이란? “내 패션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 패션을 마치는 아이템 가방이 아닌, 친환경, 비건으로부터 많은 스토리가 시작되는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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